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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l poetry club:

[ lecture script// "All the things that build up like shiny dust in the hole of my roo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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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근 3d.png

Hole 1. 

식물 지하 저장 기관의 역학적 성질.

뿌리줄기는 변형과 균열에 잘 견디고, 뒤따라 덩이줄기, 구경, 구근 등이 있다.

엔지니어링 구조에 구멍을 사용하는 건 물체를 더 가볍고 내구성있게 만든다는 이점이 있는데, 

동시에 구멍들이 재료적 결함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연근은 관이 규칙적으로 배열된 독특한 기하학적 구조를 갖는다. 

연근의 다공성과 질서 정연한 기공은 이미 많은 공학적 영감을 준다. 

외부의 물과 진흙의 하중(프레션)이 적용될 때 연근에 응력이 발생한다. 

이러한 내부의 응력-스트레스 상태는 세포 팽창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스트레스가 응력이고 응력을 스트레스라 한다.

저항이라는 역학 언어와 감각 언어의 혼용은 

근육의 톤을 근육의 어조로 오해했을 때를 떠올린다.

 

Hole 2.

 

그러니까,

진흙 속에서 사는 연근은 외부 수압을 견디기 위해 자신의 몸에 구멍을 낸다고 합니다. 

숨구멍의 일환으로 낸답니다. 

저항에 견디기 위해 자신의 몸에 기다란 구멍을 내고 숨을 쉽니다. 

뿌리는 여러마디로 나뉘고, 또 다른 뿌리를 냅니다. 

구멍은 통로로, 통로는 구멍으로.

 

이 식물과 ‘나’ 사이에 위태로운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 연근의 구조가 형성되는 과정으로서, 

다시 말해 외부의 압박에 의해 몸 안으로 구멍을 내어 숨을 쉬는 생존 방식은

마치 <유색인 여성으로서 외국에서 사는 내 몸,

혹은 여성으로서 한국에 사는 내 몸>의 은유가 될 수 있습니다. 

 

외부 자극에 의해 응력을 받아 내부에 통로를 내어 살아갈 구멍을 만드는 듯 하여

동질감을 느낀것입니다. 

연근의 구멍과 달리 내게서 숨구멍은 어떤 ‘이해의 구멍'을,

또 다른 방식의 ‘변형 가능성’을 받아들임, 또한 ‘다양성’과 가깝습니다.

 

우선은 그런식으로 나의 세계 내부에 새겨지는 구멍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Hole 3.

연근의 구멍은 어떤 믿음의 형태와 같습니다. 

나는 연근의 단면을 반으로 잘랐고, 

그 축을 중심으로 경로를 회전시켜 3d 구를 만들었습니다. 

 

구멍은 하나로.

 

모든게 하나로 된다는 믿음 

아홉개 이상의 구멍이 하나로 된다는 믿음.

 

계속 기억해야합니다. 

 

 

Hole 4. 

 

구멍을 깨끗하게 유지할 필요는 없습니다. 

구멍은 축축하거나, 건조해서,

이끼가 생기고 먼지가 쌓일 것 입니다. 
 

하지만 계속 돌봐야합니다.

 

연근은 관심의 형태입니다.

연근의 구멍은 습하고,

축축하고, 어둡고, 가끔 연근에 별이나 달의 빛이 닿으면 미세한 베이지 빛이 일다가 이내 다시 어두워질 것입니다. 

 

기어가거나,

걸어가거나 

뛰기도 해보세요.

 

이 통로는 

숨의 통로입니다. 

 

호흡이 가는 경로.

 

Hole 5.

 

통로는 시간과 공간의 축적 

 

산부인과에서 내 성기에 난 요철들을 제거하는 수술

(나는 여전히 이 병명을 드러내는 데에 많은 생각을 한다.)을 하던 때, 

국소마취인지, 전신마취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수술실은 여러 단계의 문을 통과했어야 했습니다. 

침대에 누운채로 깊숙한 터널로 계속해서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고, 

마침내 수술실에 들어서니, 점차 차지는 공기에 온전히 혼자라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간호사는 주사를 놓으며, 괜찮아, 괜찮아 하며 눈을 깜빡여보라고 했습니다. 

나는 이미 모든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녹아내리는 기분을 느끼며

수술실의 빛나는 스테인레스 테이블을 응시했습니다.

그 순간 매끈한 inox 표면에 갑자기 털이 돋아나기 시작했고 

마취가 시작되었고 난 그대로 잠에 들었습니다. 

내가 몰랐기 때문에 슬퍼지게 된 것들.

 

‘연근’으로부터 ‘몸’에까지 미치게 됩니다.

Hole 6.

끈적하고 하얀 것에 대한 Clarice Lispector의 섬망.
으깨진 바퀴벌레에서 튀어나온 하얀 덩어리에 역겨움을 느낀 G.H.는 

어머니의 몸에서 튀어나온 하얀 액체인 우유를 마신 기억을 떠올린다.

" 왜 나는 바퀴벌레의 몸에서 튀어나온 덩어리에 역겨움을 느끼는가? 나는 어머니의 몸에서 나온 흰 액체분비물인 젖을 마시지 않았던가? 어머니를 이루는 성분인 그 분비물을 마시면서 나는 비록 그 이름을 모르는 상태이기는 했지만,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

 

Hole 7.

 

연근을 통해 볼 베어링의 차갑고도 유연한 몸체를 상상합니다.
작년 여름, 연근을 조리하여 먹으면서

이 야채의 단면이 볼베어링의 모양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는 기계의 내장되어 장기와 같이 회전운동을 보조하는 베어링에 많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망상일 수 있습니다.
볼베어링 표면에 묻은 구리스의 점액질과 볼의 부드러운 마찰은 차가운 기계부품으로부터 온순함과 유순함, 유연한 움직임을 상상하게 했고, 이를 막연하게 연근과 엮어보고 싶었습니다.


프랑스로 돌아와 아시아 식료품점에서 이 야채의 시체를 재발견했습니다.

꽤 비쌌지만 대신 진공포장해서 신선했습니다. 이 연근이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했습니다.
연근을 요리하고 씹고 섭취하는 과정에서 안정감도 있지만

외국에서 연근을 구하기까지 피로함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Hole 8.

규정되지 않은 저항을 온전히 다 받아내던 한 신체가 있다. 

이러한 행위를 지속할 수 있는 몸을 갖기 위해서는 연근적(lotus root-ical) 사고를 믿는 것

 

소리 죽여 울지마

소리 내서 울어. 

 

내가 슬픔에 빠졌을 때, 나는 침묵안에서 울곤했습니다. 

삭힌다고 합니다. 

기분을 삭히거나, 

분노를 삭히거나 

성욕을 삭히고, 울분을 삭힙니다.

 

엄마는 삭히지 말고 터트리라고 합니다.

 

삭힌다는 것은 무엇일까. 

발효시키는 것 

내 감정을 발효시키는 것

 

방치-로인한 죄책감이, 발효라는 이름으로 해방될 수 있을까요?

 

나는 내 주변의 물건을 잘 잃어버립니다. 

때때로 억울할 만큼 

어떤존재가 나를 시험에 들게 하기 위해 벌인 일이라고 생각할 만큼.

 

구멍난 몸에 익숙합니다.

구멍에 익숙하다는 것 


내 뿌리의 구멍에 빛나는 먼지처럼 쌓이는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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